육군 3사관학교 출신 최초 합참의장 이순진 장군

1954년 10월 생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 14회 졸업하고 육군 3사관학교 14기로 입교하여 1977년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하게 됩니다. 이후 위탁교육으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학사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3사 14기로 877년에 임관하여 육군사관학교 33기, 학군단 15기와 임관동기이지만, 당시에는 임관연도로 따지지 않고, 학력이 고졸 그리고 나이가 2살 어리다는 이유로 대위 진급부터 타 출신 임관동기들보다 2년이 늦어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이순진 장군은 보병 소위로 임관하여 주요 보직으로는 소대장, 중대장, 작전장교, 작전과장, 작전참모 등 작전분야 참모로 임무수행을 했고 육군 준장으로 진급해 7사단 부사단장, 2군단 참모장을 역임합니다.
양구 군인 폭행사건

2009년 육군 소장(2스타)로 진급하여 2보병사단장을 역임하는데, 2보병사단장 시절 군에서 아주 유명한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바로 2보병사단장 시절, 유명한 양구 군인 폭행사건입니다. 당시 늦은 시각 양구시내 길가에서 고등학생 10명이 어깨를 부딪혔다는 이유로 휴가나온 군인 2명을 집단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게됩니다. 군인들은 민간인과 시비가 붙거나 혹은 절대로 민간인에게 폭행을 위두르면 안된다는 교육을 받기때문에 민간인의 집단폭행을 당하기만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군인들은 양구군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당시에 양구군은 군인들을 상대로 먹고 살았는데, 2011년 당시 PC방 요금이 시간당 2천원, 노후된 숙박업소 요금이 1박에 10만원, 택시요금은 기사님 마음대로 요금을 받았습니다. 식당에서는 카드는 안되고 현금만 결제를 받고, 군인용 가격이 따로 높게 책정되어있을 정도로 양구군은 군인들을 상대로 말도 안되는 장사를 하였고, 군인들은 위수지역을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군인 가족과 군인들은 그런 것을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양구군에 주둔하는 군인들은 매 계절마다 대민지원 재해복구 등 군부대가 양구군민들을 위해서 노동력까지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군인 대우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 양구군에 주둔하고 있었던 22사단, 21사단장은 간부 및 장병 외출,외박 통제, 휴가자들은 양구를 거치지 않고 바로 휴가를 출발할 수 있도록 부대에서 버스를 태워서 보내고 군인 가족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일심동체하여 부대 안의 PX를 사용하게 됩니다. 양구군은 관광자원이 부족해서 지역경제를 군인들이 이끌어 나갔는데 주말에 군인들이 단 한명도 나오질 않자 지역경제가 마비되고 주민들은 군인들의 외출, 외박을 풀어달라고 이야기하지만 사단장들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위수지역 검토까지 나오자, 양구 주민들은 지역경제가 망하게 될까봐 불안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군인들을 집단 폭행한 고등학생 10명을 양구군민들이 직접 잡았고, 양구군수가 병원에 입원한 피해병사를 찾아가 병문안하고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양구 물가를 재정비하는 조건으로 군인들의 외출, 외박 통제를 해제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요금은 다시 오르고, 바가지 요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담제조기, 3사 최초 합참의장 이순진 장군

2012년 이순진 장군은 육군 중장(3스타)로 진급해 수도군단장 및 항공작전 사령관을 역임합니다. 2014년 육군 3사관학교 출신 중 3번째로 대장(4스타)으로 진급하여 육군 2작전사령관에 취임합니다. 2015년 육군 3사관학교 출신 최초로 제 39대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합참의장)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순진 장군은 대표적인 덕장으로 많은 미담이 있는데, 짐을 가득 들고 신병위로휴가를 나가는 이등병을 보고 안쓰러워 수도군단장 시절 이등병을 본인의 차에 태워 부대근처 역까지 데려다 준 이야기, 주말에 경계근무지에 순시를 가서 고생한다고 맛있는 것을 사먹으라고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준 이야기, 무더운 여름날 국기계양식을 하는데 병력들이 힘이 들까봐 훈화말씀을 "여러분, 사랑합니다."하고 짧고 굵게 마친 이야기, 회관에서 회식하고 부대로 복귀 할 때에는 맛있는 것을 혼자 먹는 것이 미안해서 위병소에 간식을 사다준 이야기, 심지어 이순진 장군의 아내는 공관병도 필요 없고 음식도 아내가 직접하고, 사적 용무를 절대 지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또한 공관을 정비하는 병사들에게 이순진 장군의 아내가 맛있는 간식을 해주었다는 이야기 등 대표적인 덕장이며, 참군인의 표본이 되는 장군입니다.

2017년 합참의장직을 내려오면서 전역식을 같이 실시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관하여 실시하였고 군생활 42년 동안 45번의 이사를 하고 40여년의 군생활 동안 아내와 마음 편히 여행 한 번 가지 못한 것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이순진 장군의 자녀가 있는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깜짝 전역 선물로 수여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순진 장군은 전역사에서 지금까지 함께 해 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달했고, "독선에 빠지지 않고 부대원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도록 가족들이 뒤에서 항상 조언해주었다. 그리고 만일 아내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42년간의 군생활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제설작전간 병사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고, 병사들의 생일에 직접 손편지를 쓰고, 공관에서 작업하는 공관병들에게 간식을 내어주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부하에게 자상한 진정한 참군인.
앞으로 제 2의 이순진, 제 3의 참군인이 탄생되었으면 좋겠습니다.
